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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웅의 여행톡] 대초원 자전거, 몽골 심장 가다

  • 몽골=박정웅 기자 |입력 : 2019.07.2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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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 몽골 자전거여행 종착지
칭기즈칸광장과 간당사원
몽골이 존경하는 독립운동가 이태준

자이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울란바토르 전경. 전망대에서 독수리 체험을 지켜보는 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몽골의 대초원에서 강력한 리더십으로 세계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 울란바토르의 동쪽 천진벌덕의 칭기즈칸 기마상이 대초원을 굽어본다. 이 기마상을 중심으로 사흘간 케이벨로의 대초원 자전거여행이 펼쳐졌다.

25일(현지시간) 이들의 최종 행선지는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다. 자전거여행객들은 이번에는 안장에서 내려 관광모드로 태세를 전환했다. 이들이 가장 먼저 찾은 데는 몽골의 랜드마크인 도심 중앙의 칭기즈칸광장이다. 이 광장은 세계 최대 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을 기념한 곳이다. 대초원의 기마상에서처럼 칭기즈칸은 거대한 동상으로 환생해 드넓은 광장을 응시하고 있다.

◆칭기즈칸, 몽골의 심장에 우뚝 서다

칭기즈칸광장 전경. 정면 중앙에 칭기즈칸 동상이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칭기즈칸 동상을 중심으로 몽골 정부청사와 국회가 들어서 있다. 그 구조가 마치 칭기즈칸을 호위한 듯하다. 칭기즈칸광장은 본래는 수흐바타르광장이었다. 수흐바타르 장군은 몽골을 중국에서 독립시킨 몽골의 또 다른 영웅이다. 그러다가 2013년 칭기즈칸광장으로 바뀌었다.

광장은 광장 역할을 톡톡히 한다. 민주화 요구 등 각종 시위가 칭기즈칸광장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 또한 기억과 만남의 장이기도 하다. 각종 기념할 만한 날에 만나는 약속의 장소로도 통한다. 가령 졸업 25주년이나 30주년을 맞이한 날에 동창생들이 칭기즈칸광장에서 재회를 하는 것이다.

정부청사 중앙에 설치된 칭기즈칸 동상. 청사 구역으로 입장이 제한된다. /사진=박정웅 기자
이날도 30주년 명찰을 단 무리들이 칭기즈칸 동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뿐이랴. 젊은층에선 웨딩 사진촬영의 단골명소로도 두루 쓰인다고 한다. 그러니 칭기즈칸의 존재는 몽골인의 자부심이면서 몽골 국가와 동일시되는 듯하다.

칭기즈칸광장 왼쪽에는 국립역사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다. 국립역사박물관도 칭기즈칸이 중심이다. 전시실을 오르는 메인 통로의 정면에서 칭기즈칸이 계단 아래를 굽어본다. 국립역사박물관은 몽골의 역사와 문화, 생활 방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몽골의 역사를 시대와 테마별로 전시했다. 칭기즈칸광장에서 기념일에 만난 사람들이 이곳을 이어 찾을 정도로 몽골인에게는 울란바토르 여행 코스의 정석이랄 수 있다.

몽골국립역사박물관의 칭기즈칸 인물화. /사진=박정웅 기자

◆간당사원, 몽골 티베트불교의 중심

몽골인들의 종교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칭기즈칸광장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간당사원이 그곳이다. 티베트(라마) 불교사원으로 500년 역사를 간직했다. 티베트사원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둥근 원통처럼 생긴 마니차를 돌리는 것이다. 이 행위는 경전을 다 읽은 것과 같다는 의미다.

마니차를 돌리는 사람보다는 붉은색 나무기둥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이들에게 눈길이 끌렸다. 주차장 입구에서 정문 오른쪽 나무기둥이 그것이다. 알고 보니 간당사원의 500년사는 이 기둥 하나에만 남았다는 것. 사원 모두가 전란 등으로 불탔고 모든 건물은 19세기 초에 재건됐다고 한다.

간당사원 입구. /사진=박정웅 기자
간당사원 본당(가운데). 오른쪽 붉은 나무기둥은 이 사원의 500년사를 기억하는 유일한 구조물이다. /사진=박정웅 기자
간당사원은 도심 중심에 있어 찾는 이가 많다. 조금만 지켜봐도 건물 곳곳에 있는 마니차를 돌리는 풍경에 익숙해진다. 여행객들은 자신의 종교에 게의치 않고 마니차를 돌린다. 특히 관세음보살을 모신 본당의 마니차는 인기가 높다.

관세음보살상은 그 높이가 무려 16m나 돼서 모든 소원을 다 들어줄 태세다. 때문에 본당 마니차를 돌리는 행렬은 끊이질 않는다. 이 본당에서 인상적인 표지판이 있다. 본당 오른쪽에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설명이다. 소매치기들이 마니차를 돌리는 데 집중하느라 신경 쓰지 못하는 뒤쪽을 노린다는 얘기다.

◆‘몽골의 슈바이처’, 독립운동가 이태준 선생

자이산 승전 전망대에 오른 자전거여행객들. 전망대 구조물 사이로 울란바토르 도심이 보인다. /사진=박정웅 기자
몽골은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끼인 처지였다. 중국과의 관계는 원나라에 대한 청나라의 복수, 그리고 내몽고 지역 강탈로 대변된다. 현재도 썩 달갑지 않은 관계다. 반면 러시아와는 사이가 달랐다. 역사 해설에는 이견이 있겠으나 몽골은 친러정책을 펼치며 러시아의 전략적인 도움을 받은 것.

사실은 러시아의 내정 간섭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소련연방이 해체되는 격변기와 민주화운동이 일기 전까지 러시아가 몽골의 원수를 좌지우지했다는 얘기도 있다. 자이산 승전 전망대가 이를 증명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군의 군속 또는 용병으로 몽골군이 참전한 것을 기념해 러시아가 건설했다. 러시아의 승전이 몽골인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울란바토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에서 그들의 말 못할 현대사도 읽는다.

이태준선생기념공원. 몽골 훈장수여 확인 표지석(오른쪽)과 이 선생의 가묘. /사진=박정웅 기자
이태준기념관을 찾은 자전거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전망대 아래는 몽골과 비슷한 처지에서 아픔을 겪은 우리의 독립운동가가 있다. 이태준열사기념공원(이태준선생기념공원)이 그곳이다. ‘몽골의 슈바이처’인 그는 1914년 울란바토르로 가서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운반했다. 또 약산 김원봉 선생의 의열단 활동에 헌신했다. 몽골인들 사이에서는 영웅 칭호를 받는다. 당시 몽골 전역에 만연한 질병을 퇴치한 공로로 1919년 몽골정부로터 훈장을 받았다. 선생은 1921년 러시아 백군에게 안타깝게 피살당했다.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이 추서됐다.

한국과 몽골 정부는 2001년 이곳에 공원을 조성했다. 기념공원은 울란바토르에서도 고급주택단지가 있는 곳에 꽤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유지와 관리 또한 잘 되고 있다는 대목에서 이 선생의 존재 가치와 민족의 자긍심을 확인할 수 있다. 공원 중앙의 표지석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몽골 외무부의 훈장 수여 확인 문서 표지석과 이태준선생의묘(가묘)가 았다. 또 오른쪽에는 이 선생의 독립운동과 인술활동을 안내하는 이태준기념관이 있다.

지난 5월 MBC 특별기획 ‘이몽’이 이태준 선생을 조명했다.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3월 이곳을 찾았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그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해외 독립운동가를 찾는 취지였다. 몽골인들도 존경하는 이태준 선생이다. 몽골을 여행하는 한국인이라면 이제라도 이태준 선생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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