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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웅의 여행톡] 굽이굽이… 내 몸은 바퀴가 되다

  • 영주(경북)=박정웅 기자 |입력 : 2018.11.15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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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 가을 백두대간 날다
소백산 휘휘 두른 선비고을 가로지른 '백두대간 그란폰도'


동양대학교를 나서는 백두대간 그란폰도 참가자들. /사진=박정웅 기자

한국의 명산, 소백산이 자전거 물결을 반겼다. 지난 3일 오전 경북 영주시, 백두대간 소백산 일대는 영상의 날씨였다. 산 넓고 골 깊어 특히 가을단풍 좋기로 유명한 곳. 새벽녘 사르르 덧낀 성에는 아침 햇살이 비치자 흔적 없이 녹았다. 공기까지 맑아 딱 자전거 타기 좋은 날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KSPO·이사장 조재기)이 소백산 일대에서 개최한 '서울올림픽 30주년 기념 2018 KSPO 백두대간 그란폰도'(백두대간 그란폰도). 오전 7시 전부터 배번을 찾으려는 참가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벌써 페달링에 예열을 가하는 이도 있었다.

출발 전 참가자들과 안전 라이딩을 다짐하는 지난 대회 남녀 우승자들. /사진=박정웅 기자

1년간의 기다림에 참가자들의 표정은 한결같았다. 지난 한주, 애간장을 녹인 초겨울 날씨가 말끔히 가신 까닭일까. 아니면 백두대간의 고봉준령보다 힘들다는 그란폰도의 ‘접수령’을 넘었다는 기쁨도 있을 것. 올 한해 자전거 궤적을 정리하기로 정평이 난 대회에 기꺼이 페달을 담그는 마음가짐도 엿보인다.

◆서울올림픽 30주년 기념 백두대간 그란폰도

참가자들과 백두대간 그란폰도 코스를 달리는 구자열 대한자전거연맹 회장(왼쪽 세번째). /사진=박정웅 기자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한 백두대간 그란폰도. 이번 대회는 참가자 수를 1988명으로 묶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지난해에는 평창올림픽 성공개최를 염원하는 뜻에서 2018명을 받았는데 불과 2시간 만에 마감됐다. 올해는 서울올림픽 개최 30주년을 되새기기 위해 참가자 수를 30명 줄인 1988명으로 한정했는데 '접수마감 고지'는 단 40분 만에 점령됐다.

이는 신뢰 있는 기관의 안정적인 대회운영, 교통통제와 자원봉사 등 지자체의 전폭적인 지원, 멋진 풍광을 간직한 도전 코스가 어우러진 결과다. ‘사이클링, 가을의 전설’이라는 대회 애칭은 괜한 미사여구는 아닌 듯하다.

백두대간 그란폰도는 소백산맥 산악구간 121.3㎞를 6시간 내에 완주하는 동호인들의 비경쟁 대회다. 총 상승고는 2181m. 히티재(해발 378m·7.6㎞ 구간), 성황당고개(355m·41.7㎞), 벌재(625m·56.1㎞), 저수령(850m·85.3㎞), 옥녀봉(658m·110.5㎞)으로 이어지는 ‘깔딱고개’가 수없이 많다. 산 넘어 산이거니와 고개 몇 개를 넘다보면 이가 갈리기 마련. 하지만 한계를 시험하는 ‘위대한 도전’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파이팅을 외치는 인천지역 자전거동호회원들. 김은철 매니저·이진수 인천자전거연맹 부회장·정세교 회원(왼쪽부터). /사진=박정웅 기자

이날 오전 9시 동양대학교,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와 함께 이 물음에 답을 찾으려는 자전거 행렬이 일제히 소백산으로 달렸다. 참가자들은 물론 이들을 응원하는 가족, 친구들의 힘찬 파이팅이 대회장을 들었다 놨다. 또 정병찬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사업본부장, 장욱현 영주시장, 김상렬 영주경찰서장, 구자열 대한자전거연맹 회장, 최성해 동양대학교 총장이 이들의 안전 라이딩을 기원했다. 이 중 한국 사이클의 수장인 구 회장은 직접 안장에 올라 찬공기를 갈랐다.

◆인생 라이딩에 가족잔치… 대회 이모저모

참가자들을 환영하는 장욱현 영주시장. /사진=박정웅 기자

“재미있는 인생 라이딩이었습니다.”

인천지역 자전거 동호회(싸이클을 가진 지구인)와 함께한 이진수씨는 이번 대회가 처음이다. 참가자 모집 공고가 초읽기에 들어가자 약속한 여러 대의 컴퓨터가 일제히 접속을 시도했다. 복불복. 마치 설이나 추석 귀성 기차표를 예약하는 듯한 접수령 진풍경의 승자로 우뚝 선 것. 그런 출사표치고는 소감이 참 짧아 여운이 남았다.

인생, 산 넘어 산인가. 접수령을 넘어선 이씨의 소백산행은 탄탄대로인 듯했다. 단지 백두대간과 인연이 닿지 않았을 뿐, 내로라하는 그란폰도는 ‘준수한 기록’으로 점령했다. 실은 이씨의 외부 직함은 인천자전거연맹 부회장. 선수출신이 아닌 그가 챙기는 명함은 생업의 것보다 자전거 명함이 우선이다. 그렇다 보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게 ‘자전거’와 잇댄 일이다.

그런 그가 인생 라이딩을 했단다. 들어보니 '개고생 스토리'다. 코스 중후반 분수령인 저수령을 넘어선 코스 90㎞ 구간서 드라마가 시작됐다. 내리막길에서 앞선 행렬을 피하려다 앞바퀴가 차로와 배수로 틈 사이에 끼여 ‘잭나이프’(급제동 시 뒷바퀴가 높이 들리는 현상) 위기에 처한 것. 휠과 스포크 일부가 파손됐는데 멀쩡히 완주한 걸 보면 귀가 의심된다. 여하튼 나머지 구간을 저속주행과 ‘끌바’(내려서 자전거를 끄는 형태)로 끙끙거리면서 5시간34분 ‘컷인’을 했다.

어린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선 밸런스바이크 챔피언십. /사진=박정웅 기자

새벽차로 함께 내려온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같은 동호회의 김은철 매니저와 정세교 회원은 4시간40여분에 ‘골인’. 이씨는 웃었다. “속도를 낼 수 없으니까 늦가을 ‘만추’가 뭔지 알겠더라고요. 저무는 게 갓 피는 것보다 아름답다는 얘기가 그런 거더군요. 나를 버리고 간 회원들은 이 맛을 모를 걸요.”

이씨의 예견치 못한 완주에 가족들이 지킨 대회장에는 또 다른 자전거 풍광이 연출됐다. 참가자의 자녀나 손주들이 페달 없는 자전거로 건강한 웃음보따리를 풀어 놓은 것. 이날 첫선을 보인 ‘밸런스바이크 월드 챔피언십’에는 100여명 이상의 어린이(3~7세)가 참가해 새로운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선사했다. 어린이들의 자전거는 소백산 가족 나들이의 주인공이면서 백두대간 그란폰도의 진정한 챔피언이었다.

‘건강 영주 브랜드 알린 백두대간 그란폰도

개회사에서 참가자들을 환영하는 정병찬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사업본부장. /사진=국민체육진흥공단

참가규모 2000명. 지난해 2시간에서 올해는 40분 만에 조기마감 기록을 갈아치운 백두대간 그란폰도. 우리나라 대표 자전거축제로 대회를 만든 주인공이 있다. 2회 대회부터 이번 6회까지 대회장을 쭉 지켜온 이가 바로 장욱현 영주시장이다. 지난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장 시장은 어쩌면 백두대간 그란폰도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3일 아침 햇살이 비치기 전부터 대회장을 챙기는 그를 만났다.

- 해를 거듭해 백두대간 그란폰도가 인기다. 
▶먼저 전국 자전거 동호인들의 사랑에 감사의 말씀 전한다. 인기 비결은 참가자들의 좋은 평가다. 관광분야에서 여행객들의 재방문율이 중요한 것처럼 우리 대회 역시 그렇다. 참가 경험이 있는 분들의 재참가율이 높다. 좋은 평가는 재참가로, 또 참가하지 못한 다른 분까지 입소문이 퍼진다. 한마디로 선순환 구조다.

- 백두대간 그란폰도만의 특별한 자랑거리는.
▶소백산이 간직한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산악코스를 갖춘 데다 가을단풍이 절정일 무렵에 개최한다. 참가자들만의 대회가 아니다. 소수서원, 무섬마을, 선비촌, 부석사 등 우리 지역 관광명소가 많다. 모두 가족들이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대회에 즈음해 사과와 인삼 등 영주가 자랑하는 농특산물 축제가 열린다. 특히 올해는 어린이들이 참가하는 밸런스바이크 챔피언십도 열렸다. 다시 말해 백두대간 그란폰도는 즐길거리, 먹거리, 볼거리가 한데 어우러진다.

- 대회가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가 클 것 같다.
▶경치와 코스가 좋다고 대회가 성사되지 않는다. 지역민과 경찰이 ‘내 일’처럼 뛴다. 쾌적하고 안전한 대회는 이분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회로, 영주시 브랜드 가치 상승에 일조했다. 지역민이 대회를 자랑거리로 만들었고 자연스레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됐다. 대회를 기점으로 지역에서 숙식하는 외래인이 늘었다. 동호인 대회임에도 코스가 공지되면 사전 연습을 위해 영주를 찾는 이가 많다.

-백두대간 그란폰도의 또 다른 자랑거리가 있다면.
▶돈으로만 따질 수 없는 게 문화적 효과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부석사를 비롯한 영주의 자연·문화·역사 자원을 널리 알리는 데 백두대간 그란폰도가 홍보대사 역할을 한다. 앞서 중국인 자전거여행객들이 풍기인삼축제를 찾았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66호(2018년 11월14~2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